제주 대정읍 모슬포(동일리 10)에 순교자 황사영 알렉시오의 부인 정난주 마리아의 묘가 있다. 제주에 들를 때마다 꼭 찾아보는 순례지이기도 하다. 갈 때마다 입구부터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에 숙연해진다.

 

 

1994년 제주교구에서 선교 100주년 기념사업을 준비하고 추진하면서 기념비를 세웠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앙의 불모지인 이 땅에 신심을 증거한 정 마리아는 1773년 나주 본관 정약현(丁若鉉)과 경주 본관 이씨(李氏) 사이에서 태어나 명연(命連)이란 아명을 받았다. 일찍부터 천주교에 입교하여 전교에 힘썼던 실학자 정약전(丁若銓) 정약종(丁若鍾) 정약용(丁若鏞) 형제가 그녀의 숙부들이었고 어머니는 이 나라 신앙의 성조인 이벽(李檗)의 누이였다. 성품이 온순하고 영특하여 난주(蘭珠)라 불렀으며 외숙의 교화와 숙부들의 가르침을 받아 세례 입교하였다. 1791년 황사영(黃嗣永)과 혼인하여 1800년에 옥동자 경한(景漢)을 출산하였다. 남편인 황사영은 1775년에 때어나 약관 16세에 초시, 17세에는 복시에 장원급제하여 당시 임금인 정조로부터 입신양명을 보장받았으나 천주교를 접하면서부터 현세적 명리에 등을 돌렸다. 결혼직후 중국인 신부 주문모(周文謨)에게 알렉시오라는 교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1795년 주문모 신부와 명도회를 조직 포교에 힘쓰다가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충북 배론으로 피신하여 이른바 황사영 백서를 작성하였다. 박해의 경과와 교회의 재건에 관한 의견을 기술한 이 백서는 애석하게도 북경 주교에게 발송되기 직전 발각되어 그는 애역죄인으로 체포되고 동년 음 115일 서소문 밖에서 능지처참으로 순교하여 현재 경기도 양주군에 묻혀있다. 그 결과 그의 홀어니 이윤혜는 거제도에 처인 정 마리아는 제주도에 아들 경한은 추자도에 각각 귀양을 가제 되었다.

1801년 음 1121일 정 마리아는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한 채 두 살 난 아들을 품에 안고 귀양길에 올라 철없는 어린 아들과 추자도에서 생이별 해야 하는 어미로서의 쓰라린 고통을 겪어야 했다. 추자도에 격리된 아들은 어부 오씨(吳氏)의 손으로 하추자도 예초리에서 키워졌으며 그 후손은 현재 추자도에서 살고 있다. 제주목 대저현에 관노로 정배된 정 마리아는 이곳 거친 바람결 만큼이나 모진 시련을 신앙과 인애의 덕으로 흔연히 이겨냈으며 풍부한 교양과 뛰어난 학식으로 주민들을 교화시켜 노비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이웃들의 칭송을 받으며 살아갔다. 그침없는 순교적 행위로 신고에 찬 삶을 살다가 1838년 음 21일 병환으로 주님의 품 안에서 숨을 거두자 그녀를 흠모하던 이웃들이 유해를 이곳에 안장하였다.

이 땅에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는 이제 제주교구 선교 100주년 기념사업을 준비하고 추진하면서 정 마리아의 굳은 신심을 되새겨 신앙적 모범으로 삼고자 이곳을 새로 단장 성역화하고 이 비석을 세운다

기념비에 신앙의 증인으로 기록되어 있있지만 삶 전체가 순교자의 생애와 다름없이 굳건한 신앙의 증거로 가득했기 때문에 후손들이 그녀를 순교자의 반열에 올려 생각하고 있어서인지 기념비 뒤에 기록에는 순교자로 기록하고 있다.

레지오 단원들 또한 성모님과 일치하기 위한 수련의 여정은 순교와 같다고 했다. 사실 영적 지도자와 모든 간부들은 콜로세움(Colosseum)의 순교자들에 비교할 만한 정도로 단원들의 수준을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레지오 마리애 교본 37장 활동의 예와 방법. 359쪽. 18-20줄 참조). 그래서 레지오 단원들은 세상 한 가운데서 하느님을 증거하는 삶으로서 비록 피는 흘리지 않지만, “숨은 삶으로써 하느님 안에서 세상을 사는 방법을 택한다.

예수님의 죽음이 순교의 원형이라면,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간 그분의 삶 전체가 바로 순교의 예형이 될 수 있다. 순교자들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했던 신앙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 그리고 순교의 원형으로서 그들에게 전해준 메시지 안에 있다. 이 메시지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이 전해졌다.  우리의 삶 전반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반하는 모든 것을 거부하며, 신앙을 증거하고 자기 자신을 투신하는 것”, 세상 안에서 하느님을 사는 것이 바로 녹색순교. 그런 의미에서 순교의 기회는 얼마든지 열려있다. 더 이상 박해로 인한 적색순교가 없는 이 시대에, 교회는 적색순교에 갖는 애정만큼 녹색순교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순교성지개발에 들이는 노력과 열정만큼 세상 안에서 하느님을 사는그리스도인, “녹색순교자들을 찾아 나서고, 격려하는 것이 바로 교회의 사명이다. 몇 백 년 전에 순교한 분들의 영성만을 계속 우려내는 것으로만 그친다면, 순교성인들의 피의 대가를 이용만 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비싼 비용을 치르면서 여행을 빙자하여 순례지 방문에서 사진이나 찍고 돌아오는 것이라면, 우리가 순교성인을 공경한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들의 목숨 값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성인의 모범을 본받아야 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자신의 생물학적인 목숨을 내어놓는 적색순교” “피의 순교가 이제는 멀고도 먼 이야기가 되었다. 그래서 더 이상 박해가 없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순교성인만을 신앙의 모범으로 첫 자리에 세우는 것이 문제가 있어 보이는 이유다. 순교성인들의 영성을 오늘날 우리의 삶과 신앙 안에서 구체화, 현재화시키지 못한다면, 순교영성은 그야말로 고인(故人)과의 대화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정 성지 앞에서 우리를 성찰하게 해주는 정난주 마리아의 생애가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