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내포의 사도로 이존창 루도비코를, 전라도 호남의 사도로 유항검 아우구스티누스를 꼽는다면 제주의 사도로는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를 꼽을 수 있겠다.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1816-1867)는 제주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영세 입교하여 제주도에 복음을 전하는데 힘쓰다가 마침내 장엄한 순교로 하느님께 영광을 돌려 드린 분이다.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는 제주도 함덕리 출신으로 본래 배를 타고 다니며 소규모로 무역상을 하던 이였다. 1857년 초 제주 근해를 향해하던 중 풍랑을 만나 한 달가량 표류하다가 중국 광동성 해역에서 영국 배에 구조되어 홍콩에 있는 파리 외방 전교회에 인도되었다. 당시 그곳 에서 페낭(Penag) 신학교 조선인 신학생 이만돌 바울리노를 만나 교리를 배운 뒤, 1857531일 루이세유(Rouseile)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아 제주 출신 첫 영세자가 되었다. 이듬해 귀국 직후 서울에서 최양업 신부와 페롱(Feron) 신부를 만나 제주의 사도가 될 것을 맹세하였고, 교회 서적을 얻어 제주도에 돌아오게 된다.

최양업 신부는 김기량을 만난 사실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우리는 그를 만나서 그가 겪은 모든 이야기를 들었을 때, 참으로 하느님의 무한하신 인자하심과 섭리에 대해 감탄해 마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참으로 기묘한 방법으로 그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제주도의 주민들에게까지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과 교우를 찾으려는 열성을 보면, 그는 진실한 사람이고 믿을 만한 사람이며, 장차 좋은 교우가 될 사람입니다. 아직까지 복음의 씨가 떨어지지 않은 제주도에 천주교를 전파할 훌륭한 사도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그는 우리를 하직하면서 자기가 제주도 고항으로 돌아가면 먼저 자기 가족에게 천주교를 가르쳐 입교시킨 후 저에게 다시 오겠다고 말하였습니다.”(최양업 신부가 리브와 신부에게 보낸 1858104일자 서한)

고향에 온 그는 오로지 전교에 힘씀으로써 40여명을 입교시킨다. 그는 이들을 보살펴 줄 선교사 신부의 파견을 베르뇌(Berneux) 장 주교에게 요청하여 승인을 받지만 곧 이어질 병인박해로 좌절된다. 베르뇌 주교가 김기량을 만난 인상을 기술한 서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루이세유 신부 지도 아래 이 신학생(이 바울리노)에게 교리를 배워 그 난파자(김기량)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는 다행히 금년에 조선에 들어와 페롱 신부와 최양업 신부를 만날 수 있었는데, 이들은 그에게 책을 주면서 나와 연락을 취할 방법을 일러 주었습니다. 이 새 신자는 제주도 사람인데 총명하고 신앙이 발랄합니다. 집안이 40명 가량 되는데 그는 그들이 모두 개종할 것을 의심치 않고 있습니다. 주께서 이 겨자씨를 자라게 하여 주시기를!”(베르뇌 주교의 1858814일자 서한)

1865년 김기량은 다시 한 번 폭퐁을 만나 일본 큐우슈우 해안에 표류한 적이 있었다. 이곳에서 그는 프티장(Petitjean) 신부를 만나 가르침을 받고 그의 도움으로 귀국할 수 있었다. 프티장 신부는 1866년에 주교로 승품되어 일본 교구장으로 임명된 사람이었다. 김기량은 새로 입교한 이들을 영세시키려고 육지에 자주 다녔고, 이 무렵 자신의 순교를 예견한 천주가사를 지어 불렀다. “어와 벗님네야 치명(致命)길로 횡행하세 어렵다 치명길이야 평생 소원 사주모(事主母)요 주야 앙망 천당이로다. 펠릭스 베드로는 능도(能到) 주대전 하옵소서.” 1866년 병인박해가 한창일 때, 거제도로 장사하러 나갔다가 천주교 신자란 사실이 드러나 통영 앞바다에서 관헌에게 체포되었다.

결국 그는 장살형(杖殺刑)을 받아 수없이 많은 곤장을 맞았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켰고, 이듬해 18671(음력 186612) 교수형으로 장렬하게 순교하였다. 관헌들은 그의 신앙을 두려워하여 시신의 가슴에 대못을 박기까지 하였다.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는 제주섬에 처음으로 신앙의 씨앗을 뿌린 제주의 사도이자 최초의 순교자이다. 제주교구의 신자들은 20021월부터 김기량 시복시성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하였고,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의 노력으로 김기량은, 절차에 따라 하느님의 종으로 선포되어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과 함께 2014816일 시복되었다. 제주교구는 그의 고향인 함덕리에 순교 현양비를 세워 그의 신앙과 순교 정신을 기리고 있다.

 

 

 

현양비 건너편에 레지오 단원들에게 익숙한 벡실리움과 성모상이 마치 주회합 제대를 차려놓은 듯 자리하고 있다.

 

이 순례지의 관리는 조천 성당(제주시 조천읍 조천219)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도보 성지순례 코스로 이곳까지 올 수 있다.

이곳이 도보순례 시작점인 조천 성당이다.

 

 

 

제주교구의 성당 중 김기량 성당(제주시 구남동255/이도2)이라고 있는데, 본당의 주보로 모시고 있는 성당일 뿐, 순례지는 조천 성당에서 관리하고 있다. 김기량 순교 형양비 순례지는 내년 2021년 5월까지 기념관을 짓기 위해 공사를 하고 있으니 순례시 참조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