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방제 성지는 한눈에 성지 전체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작은 성지에 속한다. 그러나 성지에 조성된 제대 뒤쪽에 위치한 원뿔 모양의 조형물과 성지를 둘러가며 조성된 십자가의 길을 둘러보면 깊은 인상을 받게 되는 성지 중 하나이다.

 

 

연두색 철제 울타리로 둘러있는 이 성지 안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성지 중앙에 우리 눈을 사로잡는 조형물이 있다. 꼭대기에 두 성인과 아래로부터 계단을 둘러 올라가고 있는 순교자들을 기려 만든 원뿔형 조형물이다. 성령을 향한 순수하고도 추상적인 상승을 상징하는 의미를 담아 원뿔 형상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마치 이 계단을 통해 천상의 세계로 올라가는 모습을 아주 정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 새겨진 인물들은 남방제를 비롯한 신창지역 출신 순교자 36명으로 마치 천상의 세계로 올라가는 모습을 표현해 놓았다. 꼭대기에는 십자가 형상의 소나무와 함께 성 조화서 베드로와 그의 아들 성 조윤호 요셉이 서 있는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다. 조형물 아랫단에는 성 암브로시오의 사은 찬미가(Te Deum)의 한 구절인 눈부신 순교자들의 무리가 하느님 아버지를 높이 기려 받드나이다.”라고 새겨 놓았다.

 

 

 

우리의 눈길을 끄는 또 한 가지가 있다면 남방제 성지를 아우르며 조성된 십자가의 길 각 처의 조형물이다. 각 처마다 윗단과 아랫단으로 구분을 지어 한국 전통적인 인물과 의상으로 표현되어 있으면서도, 한국 순교자들이 순교한 방법도 각처에 함께 표현하고 있다. 이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십자가의 길뿐만 아니라 기도하는 이로 하여금 더 깊은 한국 순교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박해시대 신자들의 고뇌와 한국 순교 영성을 더 깊이 묵상하도록 안내해주며 예수님과의 일치를 돕는다.

 

 

 

 

 

남방제 성지는 그저 교우들이 모여 살았던 교우촌이 아니다. 이곳에 살았던 수많은 교우들이 죽음으로 자신들의 믿음을 지켜낸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순교하지는 않았지만, 병인박해(1966) 때 이곳 출신 순교자로 성인품에 오른 두 인물이 조화서 베드로(전주 숲정이)와 그의 아들 조윤호 요셉(전주 서천교)이다. 원뿔 조형물 꼭대기에 십자가를 형상화한 소나무 옆에 서 있는 두 인물이다.

 

조화서 베드로는 1815년 수원 도마지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1839년 기해박해 때 아버지 조 안드레아가 순교하자 홀어머니를 모시고 이곳 신창 땅으로 이사하여 아들 조윤호 요셉을 낳고 함께 살았다. 이곳에서 조 베드로는 1850년경부터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복사 겸 마부로 선교 활동을 도와 전국의 교우촌으로 모시고 다녔다. 1860년 경신박해 때 최양업 신부가 포졸들에게 잡혀 갇혔다가 가까스로 빠져나와 경상도 남부 지방의 사목 방문을 마쳤다. 그 후 베르뇌 주교에게 성무 집행 결과를 보고하고자 길을 나섰다가 그 길에서 최양업 신부는 과로에 장티푸스까지 겹친 아주 위급한 상황에 처했고, 조 베드로는 푸르티에 신부에게 이를 알려 병자 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최양업 신부의 선종 후 1864년 조 베드로는 가족들을 이끌고 전주 소양면 성지동에 정착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조용하고 착실하게 살고 있었지만, 1866125일 저녁 갑자기 들이닥친 포졸들에게 붙잡혀 전라 감영으로 끌려갔다. 전라 감사는 그를 회유하기 위하여 온갖 협박과 함께 배교를 강요하였지만 내 비록 이 세상에서는 죽어 없어지더라도 죽은 뒤 내 곧 새 세상에 가서 살게 될 것이요.”라고 응수하여 더욱 잔인한 고문을 당하기도 하였다. 조화서 베드로는 18661213일 전주 숲정이에서 세찬 칼을 세 번 받고 순교하였다.

조윤호 요셉은 멀리 피하라는 아버지의 말을 거절하고 그와 함께 잡혀 압송되었다. 전라 감사 앞에 불려 나간 조 요셉은 먼저 문초를 받은 아버지가 배교했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배교하라는 감사의 말에 아버지의 일은 아버지가 처리하실 줄 압니다. 저로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저는 배교할 생각이 없으니 통촉하십시오.”라고 말하였다. 사형장으로 향하는 중에도 배교하면 잃어버린 재산을 모두 다시 찾아주겠다며 회유하는 포졸들에게도 나의 생사를 결정짓는 것은 당신들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런 말은 그만 두십시오.” 하며 거절했다. 형장에서 곤장을 수없이 맞고도 죽지 않자 포졸들은 장터에 모여든 걸인들을 시켜 서천교에서 목을 매달았다. 국법에 따라 부자를 같은 날 처형하지 않았으므로 아버지 조화서는 1213일 전주 숲정이에서, 아들 조윤호는 1223일 전주 서천교에서 순교하였다. 조화서, 조윤호 부자는, 1984년 한국을 방문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56일 시성되었다.

(한국천주교성지순례(2019), 60; 2020621일 연중 제12주일/ 628일 연중 제13주일 대전주보 4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