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 사적지로 올라와 있는 지석리(충남 부여군 충화면 지석리 368-1)1866년 병인박해 때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손선지 베드로와 정문호 바르톨로메오의 고향이다. 두 순교자는 1984년 한국을 방문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성인 반열에 올랐다. 지석리에 살고 있던 손선지 성인의 종씨들이 가난한 생활 가운데서도 선조의 시성비라도 세워 달라고 홍산 성당에 밭을 기증하여 이 자리를 마련하였다. 도로변에 위치해 있어서 안내표지판을 못보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곳이다. 야트막한 공터에 돌로 세워진 기념비와 돌 제단이 조성되어 있는 곳이다.

 

 

 

 

 

손선지 베드로(1820-1866)는 성품이 온순하고 열심한 신앙으로 16세 때 샤스탕 신부(1839년 순교)에게 전교 회장으로 임명되었고, 순교할 때까지 회장직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병인박해 때 그는 전주 지역의 교우촌인 대성동 신리에 살면서 자신의 집을 공소로 사용하였다. 125일 담배를 사러온 사람처럼 위장한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심문을 받다가 회장 신분이 탄로나, 관장에게 공소를 거쳐 간 서양 신부들의 이름과 교회 서적의 출처를 대라고 강요당하며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다. 그는 옥중에서도 회장의 직무를 다해 갇혀 있는 신자들을 위로하고 권면했다. 1213일 숲정이에서 형이 집행될 때까지 손선지는 하늘을 향하여 예수 마리아를 계속 부르며 기도를 드렸다. 순교할 때 그의 나이 47세였다.

정문호 바르톨로메오(1801-1866) 손선지와 같은 임천 출신으로 한때 고을 원님을 지낸 바 있는데, 손선지의 영향으로 입교하였고 입교한 후에는 관직에서 물러나 신앙생활에만 전념하였다. 그 뒤 박해를 피해 고향을 버리고 여러 지역을 유랑하다가 동향 사람 손선지가 있는 완주군 대승리 신리골에 정착하여 담배 농사를 주업으로 생계를 꾸려 나갔다. 품행이 단정하고 성품이 강직하여 교우들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평판이 좋았다. 125일 담배를 사러온 상인으로 가장한 포졸들에게 붙잡히게 되어 1213일에 5명의 교우와 함께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참수되어 66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그는 형장에 끌려가면서도 오늘 우리는 천국으로 과거 보러 가는 날이다. 오늘은 정말 기뻐해야 할 날이다.” 하며 진심으로 순교를 기뻐하였다고 한다.

손선지, 정문호 두 성인은 팔이 부러지고 살이 터져 나가는 혹독한 고문 속에서도 평온을 잃지 않았고, 형장에서도 오히려 축복의 순간을 맞는 기쁨에 용약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주 숲정이에서 참수 치명한 두 성인의 유해는 함께 순교한 한재권 요셉 성인과 함께 현재 천호 성지에 묻혀 있다.

한국천주교성지순례(2019), 73쪽; 한국 순교자 103위 성인전, 아드리앙 로네폴 데통베 지음, 안응렬 역, 가톨릭출판사, 2017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