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베일 속에 가려져 있던 박해시대 서천 지역 신앙 선조들의 삶의 터전이자 순교자들의 유해가 묻힌 무덤 터가 2010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천방산 자락의 산막골은 서천 지역 신앙 선조들의 여러 교우촌들 가운데 하나로 가장 컸던 곳이다. 이곳은 1839년 기해박해 뒤 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자들이 신앙 공동체를 이루며 살던 곳이다. 서천 지역 순교자들 가운데 기록이 남아 있는 순교자는 57명에 이른다. 이 같은 사실은 호남교회사연구소 서종태 박사가 발간한 박해기 서천지역 천주교회사에 대한 연구자료집(신앙의 노래 역사의 향기, 서종태, 흐름출판사, 2014 참조)을 통해 밝혀졌다.

이 자료집에 따르면 천방산 산막골(현 충청남도 서천군 판교면 금덕리)은 신앙 선조들이 1839년 기해박해 이후 군란을 피해 인적 없는 산간벽지에 숨어 신앙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던 곳이자 다블뤼 주교와 페롱 신부의 사목 중심지로 밝혀졌다. 페롱 신부가 1858-1865년까지 보낸 서한들 가운데 산막골에서 보낸 편지가 6통 남아 있고, 조안노 신부가 1862114일에 산막골에서 보낸 편지가 1통 전해진다.

또한 이곳은 순교자들이 심한 형벌을 받고 피를 흘렸던 점으로 보아 성지로서의 의미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이곳은 황석두 루카 성인 일가가 1856년 충청북도 연풍에서 이주해 와 1866년 병인박해가 있기 전 10여 년 동안 머물면서 참회와 보속의 삶을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특히 페롱신부는 1858년부터 이곳에서 은거하며 황석두 성인으로부터 한문과 조선문화를 배우며 사목활동을 했다고 전한다.

 

 

 

 

 

 

대전교구 서천 본당 주임으로 정성용 신부가 부임하면서 베일 속에 가려져 있던 박해시대 서천 지역 신앙 선조들의 숭고한 터전들이 하나씩 밝혀지게 되었다. 작은재 공소에서 산위로 임도를 따라 고갯마루에 오르면 작은재 줄무덤이 나온다. 정확한 주소는 충남 서천군 문산면 수암리 산79-1(78과 산79-1경계)이다. 이 주소로 되어 있는 천방산 기슭은 수암리의 독뫼 공소 터와 판교면 금덕리의 작은재 공소터를 이어주는 고갯마루로 이름 없이 살다간 숱한 신앙 선조들의 줄무덤이 있던 자리였다. 하지만 1994년 천마산 산림도로 포장공사를 할 때 유골들이 십자가 묵주 등 성물과 함께 출토 되었는데 연고가 없어서 인근에 다시 매장되었다고 한다. 이후 성지를 조성하면서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가 없어서 작은재 줄무덤 터에 기념비를 세워서 순교자들을 현양하고 있다.

서천 본당은 201011월 천방산 고갯마루에서 유흥식 주교 주례로 산막골 작은재 줄무덤 터 현양미사를 봉헌하고, 수암리의 독뫼 공소 터에 세워진 성모동산과 공소 터에서 작은재를 오르는 산길에 세워진 십자가의 길 14처에 대한 축복식도 가졌다. 또한 독뫼 공소와 작은재 공소 터에 기념비를 세워 교우촌 순례길을 돕고 있으며, 작은재 줄무덤 터에도 기념비를 세워 천주교 백색 순교자들을 현양하고 있다.

(참고 https://blog.daum.net/sunghwa/15853470; 한국천주교성지순례(2019)」, 64쪽)

 

 

 

 

 

독뫼 교우촌은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가 있을 때에 박해를 피해 내려온 서울, 경기, 내포지역 신자들이 교우촌을 이루어 살던 곳이다. 독뫼에서 옹기굴과 숯가마를 이용하여 첨례를 지냈고, 189911월에는 뮤텔 주교의 사목 방문이 있었다. 이곳은 마을로 내려온 공소로 양지뜸에서 공소가 이루어졌다. 독뫼공소터를 알리는 안내석과 성모동산 사이의 임도로 올라가면 작은재 줄무덤 성지와 작은재 공소터로 갈 수 있다. 현재 산막골에서 작은재로 이어지는 옛길 3.5km를 복원하여 교우촌 순례길을 조성하는 중이다(20175월 현재). 멀리 서해가 보이는 이 길은 옛 공소 신자들이 애환을 함께하며 넘나들던 곳이다.

 

 

독뫼 공소터 우측으로 성모동산이 조성되어 있고 표지석과 성모동산 중간 임도로 올라가면 십자가의 길과 작은재 줄무덤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이 작은재 공소터이다.

 

 

작은재 공소터의 우측으로 보이는 직진해서 올라가는 임도로 가면 작은재 줄무덤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