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짓골하면 사성제대’(四聖祭臺)를 떠올리게 된다. 이 사성제대는 죽음을 무릅쓴 신자들의 신앙이 담겨 전해지는 빈 무덤이다. 1866330일 갈매못에서 안토니오 다블뤼 주교와 루카 위앵 신부와 베드로 오매트르 신부와 장주기 요셉과 황석두 루카 5위의 성인이 참수 순교했다. 본래는 한양 새남터에서 처형을 하려 했으나, 당시 고종임금이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부정타지 않게 한양에서 피를 보지않고 250리 떨어진 갈매못에서 처형을 했다.

이들 시신은 모래자갈 속에 방치되었다가 두 달 뒤, 황석두 루카 성인의 시신은 가족들의 손으로 수습되어 삽티에 안장되었고, 나머지 4위의 시신은 서짓골에 살던 이화만 바오로의 가족과 신자들들에 의해 91(음력 715) 이곳에 묻혔다. 목숨 걸고 순교자의 시신을 매장한 서짓골 신자들은 몇 달 후 체포되어 서울에서 처형되었다.

이후 한동안 순교자들의 무덤을 지킬 사람이 없이 16년간 방치되어 오다가 1882년 살아남은 신자들이 순교자 유해를 발굴하여 수습했다. 이때 수습된 순교자 유해가 일본 나가사키 오우라 성당 구내 신학교에 보내져 12년 동안 보관되다가, 1894년 서울로 모셔져 용산신학교를 거쳐 1900년 명동성당에 모셔졌다가 1967년 절두산에 안장되었다. 서짓골 성지 순교성인 4위 면례기념비에는 서짓골 순교성인 유해 이전봉안 약사가 새겨져 있다.

여기 서짓골에 16년간 안장된 네 분의 거룩한 육신은 이곳에 진토되어 사성제대가 되었다. 그 유골 일부는 나가사키의 오우라 성당에 12년간 봉안 후 한국에 반환되었다. 그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이곳 서짓골의 안장지에서 출토한 돌을 오우라 성당에 기념비로 세웠다. 이에 대전교구장 라자로 유흥식 주교와 나가사키 대교구장, 요셉 타카미미츠아키 대주교는 서짓골의 면례기념비 건립을 명하였다.”

갈매못에서 순교한 5위의 성인 중 4위의 성인의 유해가 안장되었던 서짓골은 유해가 옮겨진 후에도 갈매못 성지를 방문한 천주교신자들의 순례코스가 되었고, 20131031일 대전교구에서는 천주교 순교성인 안장지 성지 축성식을 열며 150년만에 천주교순례지로 조성되었다.

갈매못 인근 야산에 임시 암장되었던 유해는 배를 이용하여 바닷길로 웅천 완장포에 당도한 후 산길을 통하여 여기 서짓골에 안장하기까지 12일이 걸렸다고 한다. 갈매못 서짓골 성지 순례길 안내도에는 순례길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 자료에 의하면 이장 비용을 신자들에게 추렴했으며 신자들은 비신자 최가의 배를 빌리고 역시 비신자인 서성학 형제를 사공으로 고용했다고 한다.

양업교회사연구소 차기진 루카 소장은 갈매못 인근 두 번째 무덤에서 서짓골 세 번째 무덤까지의 이동 경로를 다음과 같이 고증하고 있다. 여수애(현 보령시 오천면 오포리의 여수해) 가패 슬섬(현 보령시 주교면 송학리의 솔섬) 녹안이뿌리(현 보령시 웅천읍 독산리 독대섬) 완장내(현 보령시 웅천읍 대창리) 곰재(현 보령시 주산면 동오리) 서짓골.

 

한국천주교성지순례(2019), 66; 도앙골성지, 서짓골성지, 삽티성지 성지순례(https://leepeter.tistory.com/105)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