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군에 위치한 다락골성지는 한국의 두 번째 사제 최양업 토마스와 그의 부친 최경환 프란치스코가 탄생했으며, 무명 순교자들의 줄무덤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이 다락골 성지는 크게 새터줄무덤 성지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새터와 그 일대는 박해시대 교우들이 삶을 영위하던 곳으로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1984년 시성)이 태어나 복자 이성례 마리아(2014년 시복)와 결혼하였고, 또한 그의 장남이며 우리나라의 두번째 사제인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와 그의 형제들이 탄생하고 성장한 곳이다.

다락골성지의 어원은 달을 안은 골짜기라는 의미이다. 다락골이라는 명칭은 마을의 형태가 다락() 모양과 같다는 데서 유래한 것인데, 이것이 훗날 달안골(月內洞)’로 바뀐 것이라고 한다. 또는 다래가 많이 나는 곳이라 하여 다래골로 불리기도 한다.

최양업 신부의 증조부인 최한일은 내포의 사도라 불리던 이존창 루도비꼬 곤자가로부터 교리를 배워 입교한 후 죽었다. 곧이어 1791년 진산사건으로 시작된 신해박해(辛亥迫害)가 일어났다. 그러자, 증조모인 경주이씨(慶州李氏)12살의 외아들 최인주(최양업 신부의 조부)를 데리고 서울에서 이 마을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이때부터 다락골에 천주교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하여 1866년 병인박해 때까지 교우촌을 형성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사실 청양 지역에는 이미 그 이전에 복음이 전파되어 있었다. 신해박해 때에는 홍주(홍성)의 박취득 라우렌시오 원베드로, 청양의 황바오로 등이 체포되기도 하였다. 다락골 교우촌은 서울, 경기, 내포(충청도 북서부), 전라도 북부지역에 형성된 큰 신앙공동체의 중간에 위치하여 서로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였다.

본래 예법과 바느질에 능통하였던 이씨부인은 경성부인으로 경주 최씨와 집안 사이가 되기에 경주 최씨 마을인 이곳 사람들과 쉽게 친숙해졌다. 이씨부인이 이곳에 온지 4-5년이 지나 최인주는 다락골에서 700m 쯤 떨어진 새터에 땅을 일궈 농사를 시작하였다. 이씨부인의 아들 최인주는 결혼하여 6남매를 두었는데 그중 막내가 바로 198456일 시성된 최경환 프란치스코이며, 최경환과 결혼한 이성례 마리아(2014년 시복) 사이에 여섯 자녀 중, 장남이 최양업 토마스 신부이다. 최경환 프란치스코 가족은 좀 더 나은 신앙생활을 위해 1830년대 초에 경기 안양의 수리산(修理山)으로 이주하였다. 그때까지 다락골은 미래의 성인과 사제, 그리고 순교자들을 길러낸 터전이었다.

이 청양 다락골은 또한 1839년 기해박해 순교한 프랑스 선교사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가 마지막 미사를 봉헌한 곳이다. 서울에서 먼저 체포된 앵베르 주교가 교우들의 피해를 막고자 다락골에 피신해 있던 두 선교사에게 자수하도록 편지를 보냈다. 이에 두 선교사는 순명하며 양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 착한 목자로서 사명을 다하였다(이 박해로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부모 최경환 프란치스코와 이성례 마리아도 순교했다).

 

사실 다락골 성지가 처음에 주목받은 곳은 새터였다. 최양업 신부가 탄생한 새터가 먼저 답사의 대상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무명 순교자 줄무덤도 주목을 받게 되었다. 성역화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방윤석 베르나르도 신부에 의해 이 마을의 구전과 사료를 수집하여 현지 답사를 계속한 끝에 1981년에 줄무덤이 한 군데가 아니고 세 군데임을 밝혀냈으며, 편의상 제1, 2, 3 줄무덤으로 구분하게 되었다.

이 줄무덤 성지는 병인박해(丙寅迫害 1866)시 홍주와 공주 감영에서 치명한 무명 순교자들의 시신을 교우들이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 옮겨 모신 것이 그 시작이다. 한 봉분 속에 황급히 줄을 지어 가족끼리 시신을 묻었다 해서 줄무덤줄묘라고 전해져온다. 현재 줄무덤은 세 구역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37(본래 40)로 모두 무명 순교자들이다. 청양 성당에서는 이곳에 무명 순교자 묘비를 세우고 19821123일 묘비 제막식을 가졌다. 1986216일 줄무덤에서 150년 된 십자고상과 묵주 1점이 출토되었다.

 

이 다락골은 병인박해 이후 소멸되었다. 포졸들에 의해 발각된 교우촌은 전부 동네를 불 질렀다고 전하는데, 어떤 과정을 통해 소멸되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주위에 없어진 10개의 인가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천주교 탄압 때 마을 전체가 화를 당한 것으로 추정한다.

(참고 한국천주교성지순례, 75: http://www.daracgol.or.kr/app/main/index)

청양 다락골 성지로 들어가는 초입 아래쪽에 새터(최양업 신부님의 생가터)가 위치해 있다. 

 

 

 

 

새터를 나와 줄무덤이 있는 다락골로 향한다.

줄무덤으로 오르는 안내 표지석이다.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대나무 숲이 …

줄무덤으로 올라가는 길에 조성해 놓은 십자가의 길은 특이하다. 모두 같은 항아리인데 각 처마다 부조로 새겨져 있다.

 

제1 줄무덤

제2 줄무덤

제3 줄무덤

이곳은 소성당 안, 천정 구조가 예스럽게 고풍스럽다. 예전에 목재로 된 성당 구조가 대체로 이런 형태인 것 같다.

여기가 기념 대성전 내부 제단과 십자가인데, 특이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양 팔이 없다. 아마도 우리가 그 몫을 하라는 의미인가? 

대성전 뒤쪽에 최양업 신부님 성화가 부모님(최경환과 이성례) 성화와 함께 나란히 걸려 있다. 최양업 신부님도 어서 시복되셔야 하는데…

최양업 신부 기념관

 

대성전과 기념관에서 아래층 화장실로 가는 계단 모서리에  “네 마음을 나에게 다오!” 라고 하시는 예수 성심상이 인상 깊게 눈에 확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