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못 순교성지는 1866년 병인박해 때 다블뤼 주교, 오매트르 신부, 위앵 신부, 황석두 루카, 장주기 요셉 등 다섯 성인과 이름 모를 교우들이 순교한 전국에서 유일한 바닷가 성지이다. ‘갈매못이라는 이름은 갈마연(渴馬淵)이라는 표현에서 온 것으로 목마른 말에게 물을 먹이는 연못이라는 뜻이다. 이름 자체가 다분히 영적인 의미를 지닌다. ‘갈증을 채워주는 생명의 물이 있는 곳이라는 의미이니,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요한 4,14)라고 하신 말씀을 상기하게 한다. 순교성인뿐 아니라 이름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진 무명 순교자들의 그 우직한 신앙과 주님을 향한 사랑이 한곳에 모여 맑은 샘이 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곳은 주님께 갈증을 느끼는 당신께 다시 뛸 수 있는 영적 에너지를 채우도록 해주는 순례지이다.

신리(충남 당진시 합덕읍)에서 체포된 다블뤼 주교는 더 이상 많은 교우들이 희생되는 것을 막고자 숨어 있던 오매트르 신부와 위앵 신부에게 자수를 권고하였다. 이에 순명하여 두 선교사가 신리로 와서 자수하였고, 황석두 루카도 함께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이들은 서울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세 선교사와 황석두 루카가 처형장으로 이송될 때 함께 갇혀 있던 장주기 요셉도 동행하였다. 이들 다섯 순교자는 갈매못 바닷가의 모래사장에서 1866330일에 처형되었다. 그러나 당시 병인년 3월은 고종의 국혼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었다. 궁중에서는 무당들을 불러 점을 친 결과 국혼을 앞두고 한양에서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은 국가의 장래에 이롭지 못하니, 사형수들을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250리 밖으로 내보내어 형을 집행케 하라는 무당의 예언에 따라, 오천의 충청수영으로 보내어 군문효수하라는 명이 내려졌기 때문에 이곳 갈매못을 처형장으로 삼았던 것이다.

 

샤를 달래 신부는 그의 한국천주교회사에서 갈매못 성지에 대해 묘사하며 형장(刑場)으로 택한 곳은 바닷가 모래사장이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갈매못은 수군들이 주둔하는 군사 요충지였으며, 형장은 바로 수군들의 훈련장이었다. 조선조 당시 우리나라에는 바다를 지키는 3개의 수영이 있었다. 충무의 경상 수영, 여수의 전라 수영, 오천의 충성 수영이다. 각 수영에는 수군절도사를 상주시켰으며, 바다를 지키는 군영이 함께 있었다. 3품관의 수도절도사가 상주하였던 오천항은 군선 100여 척이 정박하고, 수군도 3,000명이 항상 주둔하였던 군항이었다. 현재는 성벽 일부와 충청 수군절도사가 주둔했던 장교청 건물과 진휼청만이 남아 있다.

 

 

오기선 요셉 신부(1907-1990)의 회고록 곡예사 같은 인생에서 충남 부여군 금사리 쇠양리 본당 주임정규량 레오(1883-1952)신부가 이곳 갈매못을 발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정규량 신부는 처형된 다섯 성인의 시신을 몰래 파서 홍산지방 석죽골로 이장한 이바오로와 그 조부 이바오로, 중백부 지수씨, 부친 힐라리오씨가 공소에 생존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도움과 같은 목격증인으로서 고증해준 편옹택씨 이조용씨 그리고 김순경씨와 함께 성인들의 머리가 걸렸던 장깃대가 세워졌던 자리와 참수하던 자리 그리고 임시로 매장했던 세 구덩이를 확인했다.

1866330일 순교한 다섯 성인들의 시신은 3일간 전시되었다가 이곳 주민들에 의해서 형장의 모래밭에 묻혔다. 3주 후에 황석두 루카의 시신은 가족들에 의해 삽티를 거쳐 현재 연풍에 안장되었고, 나머지 네 순교자의 시신은 음력 48일 이 힐라리오(치문)가 집안 식구들과 조카사위 이바르나바와 함께 성인들의 유해를 이장하기 위해 갈매못으로 갔고, 뱃길로 12일이 걸려 남포 서재골(현 서짓골)로 이장하였다. 그후 네 순교자의 유해는 18823월 블랑 부주교의 지시로 발굴되어 일본 나가사키의 오우라 대성당으로 옮겨졌다가, 1894522일에는 다시 서울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로 옮겨졌고, 1900910일에는 명동 주교좌 성당의 지하실에 안치되었다. 그리고 1967년에는 절두산 순교 기념관으로 옮겨져 지하 성당에 안치되기에 이르렀다. 다섯 순교자는 1968106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로마 베드로 대성당에서 시복되고, 198456일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여의도 광장에서 시성되었다.

– 한국천주교성지순례(2019), 58쪽과 갈매못 홈페이지(www.galmaemot.or.kr) 참조 –

대성당인데, 제대 뒷쪽 벽면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화려하게 보이지만 이 벽면은 양쪽으로 갈라져서 멀리 해안가가 보이게 만들어졌다.

이곳이 기념 성당이자 전시관이다

 

여기는 성체조배실

 

 

이곳에 초를 봉헌하며 대전 레지아 소속 레지오 단원들을 기억하고 다른 곳으로 순례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