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나드리는 한국천주교성지순례(2019)』 책자에서 순교 사적지로 분류되어 있으며, 내용은 간단하지만 요약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그대로 옮겨보았다.

“배나드리는 예산군 삽교읍 동남쪽 삽교천 가에 위치한 마을로 도리(島里)라고도 불렸다. 바다로 통하는 삽교천에 밀물 때면 사방에 물이 차 섬이 되어 배를 타고 다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861년 봄 경상도에서 발생한 박해의 영향이 배나드리에도 미쳤다. 내포 지방 출신 신자들이 경상도에 피신하여 살았기 때문이다. 181710월 배나드리에서 20-30명 가량의 신자들이 체포되었다. 그중 민 첨지 베드로와 그의 형수 안나, 송 첨지 요셉, 손연욱 요셉, 민숙간 등은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가 감옥에서 순교하였다. 손연욱의 부친 손여심은 오랫동안 해미 옥에 갇혀 있다가 10년 뒤인 1827년에 순교하였다.

배나드리 인근에서 가장 잘 알려진 순교자는 인언민 마르티노 복자이다. 그는 1737년 충청도 덕산 주래(삽교읍 용동리)에서 태어나 황사영 알렉시오에게 천주교 신앙을 배우고, 주문모 야고보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는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위해 재산을 버리고 공주로 이주하여 살다가 1739년 공주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이후 청주를 거쳐 해미로 이송되어 18001963세로 순교하였다. 그는 2014816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한국천주교성지순례(2019),63

야트막한 주차장이 구비되어 있다.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이곳에 차를 두고 300m 걸어 들어가면 순교 사적지가 나온다. 

해미 성지에 가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순교자 인언민 마르티노 복자를 만날 수 있다. 

옆에 돌제단이 십자가 형태로 둘러싼 조경 형태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정사박해(1797) 때 체포된 그는 해미에서 매질 당하고, 엄청나게 큰 돌로 가슴을 여러 번 내리치는 끔찍한 형벌을 받으면서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매질을 당하며 죽어가는 동안에도 그가 여러 차례 되뇌었던 말이 돌제단 앞에 새겨져 있다. “그렇구 말구, 기쁜 마음으로 내 목숨을 천주님께 바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