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세나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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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세나뚜스 2017-05-20T12:12:39+00:00

한국 레지오 마리애 도입과 서울 세나뚜스

1953년 5월 31일 당시 광주교구장 서리였던 해롤드 헨리 현 신부(5대 광주교구장)의 지도로 광주교구 산하 목포 산정동본당에 “치명자의 모후” 쁘레시디움과 “평화의 모후” 쁘레시디움이 탄생되었고 전국적으로 급속히 확장되어 서울에는 1955년 8월 흑석동(구 명수대)본당에 “평화의 모후” 쁘레시디움이 첫 번째로 설립되기에 이르렀다. 1957년에는 혜화동 본당에 “상지의 좌” 꾸리아가 설립되었으며, “상지의 좌” 꾸리아는 1960년 3월 30일 한국 무염시태 꼬미씨움으로 승격되었으며, 1974년 9월 25일에는 레지아로 다시 승격되었다.

이와 같이 레지오가 활발히 발전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레지오 도입 25주년을 기념하여 꼰칠리움 경축 사절로 내한한 맥그래드 신부가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질적, 양적 우수성을 높이 평가하고 한국 레지오의 발전을 위하여 서울 레지아를 국가 최상급 평의회인 세나뚜스로 승격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꼰칠리움에 제시하여 1978년 12월 23일 서울 대교구에 정식으로 세나뚜스가 승격 설립되었다.(참고로 한국 ‘중재자이신 마리아’ 꼬미씨움이 1958년 7월 13일 세나뚜스로 승격된바 있다.)

1980년 2월 18일에는 주교단의 공동 집전으로 세나뚜스 승격 미사를 성대히 거행하게 되었고, 단원들은 레지오 마리애의 알찬 활동과 조직 확장에 매진할 것을 다짐하였다. 2017년 4월 30일 현재 서울 세나뚜스 산하 행동단원 수는 142,502명이다.

레지오 마리애의 정신은 바로 성모님의 정신이다. 특히 레지오는 성모님의 깊은 겸손, 온전한 순명, 천사 같은 부드러움, 끊임없는 기도, 갖가지 고행, 티 없는 순결, 영웅적인 인내심, 천상적 지혜, 자기를 희생하는 용맹한 하느님 사랑을 자체안에 갖추고자 열망한다. 무엇보다도 그분의 믿음, 곧 그분에게서만 볼 수 있는 그 비할 데 없는 최고의 신덕을 레지오는 갈망하고 있다. 마리아의 이러한 사랑과 믿음에 감화된 레지오는 어떤 일이든지 감당하려 하고, “할 수 없다는 불평은 결코 하지 않는다. 모든 일은 할 만하고 또 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