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

2020년 8월 21일 레지오 마리애 서울 무염시태 세나뚜스 담당 신부로 인사발령을 받은 서울대교구 이동훈 시몬 신부입니다. 코로나 펜데믹이라는 어려운 시기에 제가 소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주회합으로부터 힘을 받지 못하는 레지오 단원들을 위해 지도신부 방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여러 회의 때마다 간부들에게 하게 되는 영적 훈화와 월례미사 때 강론을 이 홈페이지에 올려놓아 이곳에 접속하는 레지오 단원들의 영적 교육으로 활용할 것입니다.
아울러 제가 국내 성지순례를 하면서 제게 맡겨진 레지오 단원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다니는 곳마다 여러분들을 위해 초를 봉헌할 것이고, 순례지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기도를 이곳에 올려놓겠습니다.

제목Se. 주간회의 훈화(2020.12.16)2020-12-16 17:15
작성자 Level 9

대림 제3주간 수요일 독서와 복음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쉽사리 자신의 인생을 엮어가는 사건들 안에서 마치 자신이 그 사건들을 꾸려가는 인생의 주인공인 양 착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다음 세대를 위한 조연으로 끝나버린다. 아니면 평생을 남의 도움이나 신세만 지면서도 아직도 자신은 주인공인 양 착각하다가 끝나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 자신이 주인공으로만 알고 부단하게 열심히 살아왔던 인생이 문득 자신의 역할이 조연이나 등장인물 중 하나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얼마나 허망하겠는가?

오늘 복음을 읽다가 세례자 요한의 생애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느 날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메인 게임(Main Game)의 선수가 아니라 그저 본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흥을 돋우기 위해 마련된 오프닝 게임(Opening Game) 선수임을 알았다. 그는 지금 시커먼 벽에 촘촘한 창살과 어둡고 칙칙한 공간, 사해 동쪽 마캐루스 요새의 감옥에 갇혀있다(플라비우스, 유대고사 18,116-119). 그래서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알아보게 한다.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까?”(루카 7,19) 이미 죽음을 예감하고 자신의 삶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던 그에게 지금껏 그토록 열심히 준비해왔던 삶의 목적인 구원, 곧 구세주의 출현은 얼마나 애절한 희망이었겠는지.

오늘 세례자 요한의 마음을 독서인 이사야 예언서가 적절히 표현해주고 있다.

 

하늘아, 위에서 이슬을 내려라. 구름아, 의로움을 뿌려라. 땅은 열려 구원이 피어나게, 의로움도 함께 싹트게 하여라. 주님이 이것을 창조하였다.”(이사 45,8)

 

우리 안에 메마른 것을 다시 꽃피우는 이슬을 그리워하듯, 우리는 어떤 정의도 거짓도 혼탁함도 없이 자기 안에 바르게 조화되어 있는 의인들을 동경한다. 똑바로 자신의 길을 찾는 사람, 스스로 바르게 있는 사람, 올바로 살아가는 사람을 동경한다. 그러기에 이 깊어만 가는 대림(待臨)을 통해, 우리들 또한 의롭게 되기 위해서라도, 우리 영혼의 메마른 농토 위로 의인이 내려오시기를 갈망한다. 하늘이 이슬을 통해 의인을 비처럼 내려주시면, 우리 또한 바르고 의롭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주위에 그러한 사람들이 많다면 우리는 삶에서 힘을 받으며 살 것 같다.

 

도끼가 나무뿌리에 닿아 있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버리시고”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치우시어, 알곡은 당신의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버리실 것이다.”(루카 3,9.17) 이처럼 임박한 심판을 집행할 메시아를 예고하며 준비시켰던 세례자 요한의 기대와는 달리, 심판보다는 자비와 구원을 베푸시는 분임을 드러내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그는 충격을 좀 받은 것 같다. 그래서 자기 제자 둘을 보내어 예수님이 약속된 메시아이신지를 여쭈어본 것이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7,22) 예수님께서는 이사야가 예언한 여섯 가지의 구원활동을 열거하시며(이사 29,18-19; 35,5; 61,1) 당신이 심판자가 아닌 구원자로 오셨음을 드러내신다. 더 나아가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가 행복하다”(7,23)고 하시며 당신 때문에 걸려 넘어지거나 의심을 품지 말라고 이르신다.

 

더러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보면 주인공보다는 빛나는 조연들의 연기력에 정작 그 영화나 드라마 전체가 살아나는 경우가 있다. 아무리 조연이긴 하지만 자신들의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을 극찬하신다. 여인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요한만한 인물이 없다는 극찬이다(7,28). 기다림에 대한 응답인 셈이다.

사람의 평생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사실 얼마나 많을까? 그 많은 기다림이 우리 인생의 오픈 게임이 아닐는지?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세례자 요한은 주연이 등장하자 기꺼이 자신이 조연이었음을 인정한다. “오시기로 되어 있는 주연이 당신입니까?” 비록 하느님의 구원역사에서 조연에 불과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역할에 당당했던 요한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요즘은 어른이 없는 세상에 살아간다. 모두가 소명 없는 어린애처럼 변해간다. 소명과 가치를 인도해줄 어른이 없는 세상에서, 젊은이들은 영웅이 없는 시대에 엉뚱한 영웅이나 만들어내고, 각박하고 냉혹한 세상에서 이미 복음적인 전의를 상실해버린 교회 안의 얼굴없는 어른들은 고작 과거의 힘겨웠던 역사 안에서 살아남았던 소수의 영웅적인 집단이나 화려했던 과거의 명예만을 드높이고자 한다. 그러니 빛바랜 사진처럼 과거만 있고 영성이 없는 집단만 남아있게 된다.

선배 된 기성 신자들이나 수도자들, 먼저 서품을 받은 성직자들의 일상적인 행동양식은 새로 입교한 신참 교우들이나 후배들에게는 말로만 신앙생활을 다 하려는 이론적인 교육에서 오는 영향보다 훨씬 크다고들 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불가의 선사들도 이런 가르침을 내려주곤 했었다. “눈길을 걸을 때, 함부로 밟지 말라! 내가 걷는 이 발자국은, 뒷사람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인 세례자 요한은 잘못을 나무라는 데 주저하지 않고 진실을 말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구세주를 맞이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안배해 놓은 사람이었다. 그는 믿고 회심하지 않으면 결코 구세주를 만날 수 없다고 외쳤다. 그리고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는 우리와 모든 이를 깨워 흔드는 사자후(獅子吼)였으며, 그럼으로써 우리가 갈 길을 보여주었다. 그는 온 세상을 빛이신 예수님으로 가득 채우고자 죄와 어둠을 몰아내라고 외쳤고, 그러면서도 자신은 끝까지 그림자로 남아 있었다. “그분은 갈수록 커지셔야 하고 나는 갈수록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고 말하며 자신이 기다리던 그분을 뵈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나머지를 기꺼이 바친다.

밭을 가는 농부는 고랑을 세지 않는다고 한다. 어느새 해가 서산에 걸치고 대지에 어둠이 깔려오면 소를 몰고 돌아온다. 칼끝에만 열중할 뿐인 조각가도 저녁 밥상을 보고서야 하루가 다 지났음을 안다. 외길로만 살아온 사람은 문득 머리칼에 서리가 내렸음을 느낄 때라야 지나온 길을 되돌아본다고 한다. 그동안의 수고는 헛되지 않았겠다. 뿌린 씨는 언젠가 결실을 맺을 터이니 말이다. 그러니 세례자 요한처럼 미완으로 끝난 생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 담긴 혼은 결코 손상받지 않는다.

 

이제 오늘(12.16)로써 대림절 첫 부분이 끝나고 내일(12.17)부터 대림 둘째 부분이 시작된다. 1부를 마감하고 있는 세례자 요한에 따르면 다시 오실 메시아는 세상을 심판하실 분이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심판하시는 메시아가 아니라 구원하시는 메시아임을 강조한다. 대림시기에 우리가 기다리는 메시아가 오셔서 우리의 잘못 살고 있는 죄들을 낱낱이 들추어내시며 심판자로 오신다면 이번 성탄은 많이 부담스러울 것 같다. 오히려 우리의 어려움과 고통스러운 삶의 질곡(桎梏)과 현실을 더 헤아리시면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구원자로 오시는 분을 더 기다리게 된다.

그래서 오늘 읽은 이사야 예언서의 구절 때문에 이 깊어가는 대림절이 더 절절하다. 오랜 기간 가뭄으로 비가 오지 않을 때, 사람들은 그저 하늘을 바라볼 따름이다. 인간이 비를 내리게 할 수 없기에 그저 하늘에 매달린다. “하늘아, 위에서 이슬을 내려라. 구름아, 의로움을 뿌려라.”(이사 45,8)라는 기도가 그와 같은 마음을 담고 있다. 구름이 의로움을 뿌리고 땅에서 구원이 피어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은, 인간 자신의 힘으로 이 세상에 의로움과 구원을 가져올 수 없다는 뼈저린 체험을 바탕으로 한다. 이사야서의 말씀대로, 의로움과 구원은 오직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탄을 기다리는 대림절의 자세는 단순히 기쁘고 즐거운 날이 아니라, 가난과 질병과 죽음에서 구원을 받는 날이기에 가뭄에 비를 기다리듯이 그렇게 간절한 마음이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