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

2020년 8월 21일 레지오 마리애 서울 무염시태 세나뚜스 담당 신부로 인사발령을 받은 서울대교구 이동훈 시몬 신부입니다. 코로나 펜데믹이라는 어려운 시기에 제가 소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주회합으로부터 힘을 받지 못하는 레지오 단원들을 위해 지도신부 방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여러 회의 때마다 간부들에게 하게 되는 영적 훈화와 월례미사 때 강론을 이 홈페이지에 올려놓아 이곳에 접속하는 레지오 단원들의 영적 교육으로 활용할 것입니다.
아울러 제가 국내 성지순례를 하면서 제게 맡겨진 레지오 단원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다니는 곳마다 여러분들을 위해 초를 봉헌할 것이고, 순례지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기도를 이곳에 올려놓겠습니다.

제목제503차 월례회의 훈화(2020.12.20)2020-12-20 21:10
작성자 Level 9

 

영적독서: 24장 레지오의 수호성인들 1. 성 요셉, 교본 209-210쪽에서 발췌

 

요셉 성인은 성가정 안에서 예수님과 성모님을 위하여 가장으로서의 기본적인 역할 이외에 특별한 임무까지도 맡아 수행하셨다. 성인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요셉 성인은 성가정 안에서 하셨던 일보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똑같은 임무를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을 위하여 지금도 수행하신다. 요셉 성인은 교회의 존재와 활동이 올바로 유지되도록 도와주신다. 따라서 레지오 역시 이 성인의 돌보심에 의존하고 있다. 이 성인의 보살핌은 우리에게 활기를 주며, 어버이의 사랑을 듬뿍 느끼게 한다.(2099-17) 예수님과 성모님도 늘 요셉 성인에 대해 마음을 쓰셨고, 성인이 두 분을 모시느라 쏟은 온갖 정성스러운 노력에 대하여 성인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고 계셨다. 그러므로 레지오 단원들도 요셉 성인을 언제나 정성껏 모셔야 한다.(20922-26)

역사 안에서 예수님의 삶과 그리스도 신비체인 교회 안에서 지속되고 있는 요셉 성인의 신비적 삶을 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여러 교황들이 요셉 성인을 교회의 수호자로 선언한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2103-5) 예수님의 양부이신 요셉 성인은 모든 세대를 통하여 예수님 형제들의 양부이시기도 하다. 예수님을 낳으신 성모님의 배필 성 요셉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 신비체의 지체들이 교회의 신비적 탄생을 계속하는 동안 줄곧 성모님과 신비스럽게 일치하고 계신다.”(21014-27)

 

 

1. 지난 128일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성 마리아 대축일이기도 했지만, 1870년에 비오 9세 교황께서 성 요셉을 보편 교회의 수호자로 선포한 지 150주년을 맞이한 날이기도 하다.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교황 교서 아버지의 마음(Patris corde)을 발표하면서 내년 128일까지 1년간 성 요셉의 해로 선포하면서 모든 신자가 성 요셉의 모범을 따라 주님의 뜻을 성실하게 수행해 일상에서 신앙의 삶을 살아갈 것을 당부했다.

교황은 마리아의 배필이자 하느님 아들의 보호자로서 성 요셉은 사랑으로 가득한 가정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고, 메시아께서 이 가정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라고 가르쳤다. 교황은 성 요셉을 주목받지 않으면서도 신중하고 드러나지 않게 매일을 살아가는 사람이자 구원 역사에서 필수 불가결한 역할을 한 성인이기에, “성 요셉은 잘 드러나지 않지만, 고통의 상황에서 우리를 위해 전구하고 지지하며 안내해 줄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교황의 이 교서는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으며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 인내하면서 희망을 키워가는 평범한 사람들을 격려하고, 모든 이가 성인의 삶에서 위기를 헤쳐나갈 힘을 얻길 바라는 취지이다.

이 교서 아버지의 마음(Patris corde)을 통해 교황은 요셉 성인을 사랑받는 아버지이자 자상하고 가정을 사랑하는 아버지’, ‘하느님 뜻에 순종하는 아버지’, ‘조건 없이 마리아를 받아들인 아버지’, ‘용기 있게 가정을 지킨 아버지’, ‘가족 부양을 위해 일하는 아버지’,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조용히 지지하는 아버지의 표본을 보여준다고 전한다. 그래서 모든 신자가 성 요셉의 모범을 따르고 하느님의 완전한 충실성 안에서 신앙적 삶을 감화하길 바라며성 요셉의 해를 선포한 목적이 요셉 성인을 더욱 사랑하고 성인의 전구를 요청하며 그의 성덕과 열정을 따르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한국교회의 초창기 박해시대에 제2대 조선대목구장 앵베르 주교는 1841년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함께 배필이신 성 요셉을 한국교회의 공동 수호자로 지정하여 선포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교회의 공동 수호자로 성 요셉 성인을 모셔온 한국교회는 이번 성 요셉의 해를 맞아 교회의 부성을 재확인하고 노동의 가치를 일깨우는 등 성인의 모범을 따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성 요셉은 교회의 수호자로서 하느님 구원 역사 안에서 협조자라는 중요한 역할을 한 분이시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성 요셉의 해 선포는 성인과 같은 아버지의 강인한 부성(父性)을 통해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신앙을 이어가자는 의미”(주교회의 홍보국장 안봉환 신부)라고 설명했다.

 

 

2.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 중에서 만남과 선택이라는 것이 있다. 요셉과 마리아의 만남, 그리고 요셉의 선택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기에 과연 아름답고 행복하기만 했을까? 동침도 하기 전에 임신한 여인을 아내로 맞아 만삭이 된 마리아를 보호하며 먼 여행을 떠나고 객지에서 아기를 낳은 후 더 멀리 이집트까지 피난을 가야 했던 그의 삶은 결코 결혼해서 평탄한 삶이 아니었다. 요셉은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임으로써 그녀가 겪을 그 운명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고, 마리아와 예수님의 삶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다 해냈다. 사랑한다는 것은 이렇게 상대편의 위험과 고통까지도 떠맡아서 함께 하는 것이며, 배우자와 자녀의 운명까지 책임지는 일이라면 그 자체로 가장의 역할은 거룩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영적인 관점에서 특별히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요셉 성인께서 지니신 여러 성덕 중에, 인간으로서 어떻게 자신의 권리와 의지를 버리고 하느님의 뜻에 따르고 양보하셨는지 그 불가사의한 면에 있다. 이 부분은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타고난 권리가 있다. 그 권리는 인생의 시작과 함께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으로서, 누구로부터도 침해당하지 않을 천부적인 권리이다. 그 권리는 사람이 이성을 사용하게 되면서부터 더욱 확대되고, 특별히 여러 단계를 통해 신분이 변하게 되면, 그에 따른 권리도 더하여 획득하게 된다.

요셉 성인께서 정혼기에 이르렀을 때, 그분은 자신의 배우자를 선택할 권리가 있었다. 성인께서 마리아라는 여인과 약혼한 것은, 그의 신분이 약혼자로서 자신의 정혼자에 대한 독점적인 권리를 갖도록 약속받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자신의 미래의 배우자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것을 아셨을 때, 그분은 배우자에 대한 배신의 화풀이를 하실 수 있는 자격이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더구나 그 배신감을 안겨다 준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라는 천사의 말을 거절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남편이라는 신분으로 변화된 후에, 그분은 자신의 아내가 잉태한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반대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되었을 때, 성인께서는 아이의 이름이라도 당신 뜻대로 짓고 싶으셨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학자들과 얘기를 나누시며 가족들과 떨어졌던 아이 예수님을 크게 나무라고 야단치며, 아버지가 생각하는 가정의 질서를 바로잡고 싶으셨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하지 않으셨던 요셉 성인의 행동으로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셨고,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대로 인류를 구원하실 수 있었다.

쉽게 생각하면, 성인께서는 뭘 하지 않으셔서 성인이 되셨구나”, 극단적으로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성인이 되셨구나.”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사실 자기 뜻대로 하고 싶고, 또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것보다 어떤 면에서 볼 때 훨씬 힘든 일이다. 성인께서는 마리아가 하느님의 뜻을 기꺼이 받아들였다는 것을 아셨기에, 자신의 아내가 하느님의 뜻을 따르도록 자기 뜻을 접으셨다. 당신의 양아들이 하느님의 아들로서 다른 이들로부터 반대 받는 표적이 되셨다는 것을 아셨기에,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도록 자기 뜻을 감추셨다.

어떤 사람이 그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놔두는 일은, 그를 여러 가지 적극적인 방법으로 돕는 것보다 더 적극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데에 걸림돌이 되지 않고, 그 일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성인의 덕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루카 1,38)라고 응답하셨던 성모님의 성덕을 그대로 닮았다.

그만큼 하느님의 주도권에 대한 철저한 신뢰와 믿음이 바탕에 깔려 있지 않고서는 쉽지 않은 태도이기도 하다. 구원과 우리의 선익을 위해 이끌어가시는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지닌 요셉의 처신을 보면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바로 그 믿음이 의로움을 낳는다고 전한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아브라함이 마치 희망이 없어 보이는 듯한 처지에서도 희망하며(로마 4,18)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보였듯이 하느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주신다”(4,22)고 하신다.

더러 우리는 자신의 이상에 집착해서 그것을 하느님의 뜻인 양 해석하며, 자신이 바라는 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아니라,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강요하게 된다. 내가 하고 싶고, 또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을 때, 많은 경우 우리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소임이나 직책을 맡은 현장에서 어떤 일을 해나갈 때, 그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주도권을 가지고 활동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일을 추진하는 사람을 통해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조용히 동조하고 따라주는 일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우리도 그렇게 요셉 성인처럼 행할 수 있을 때, 예수님께서 원하시던 구원사업을 이루는 데에 걸림돌이 되지 않고, 협조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