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

2020년 8월 21일 레지오 마리애 서울 무염시태 세나뚜스 담당 신부로 인사발령을 받은 서울대교구 이동훈 시몬 신부입니다. 코로나 펜데믹이라는 어려운 시기에 제가 소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주회합으로부터 힘을 받지 못하는 레지오 단원들을 위해 지도신부 방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여러 회의 때마다 간부들에게 하게 되는 영적 훈화와 월례미사 때 강론을 이 홈페이지에 올려놓아 이곳에 접속하는 레지오 단원들의 영적 교육으로 활용할 것입니다.
아울러 제가 국내 성지순례를 하면서 제게 맡겨진 레지오 단원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다니는 곳마다 여러분들을 위해 초를 봉헌할 것이고, 순례지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기도를 이곳에 올려놓겠습니다.

제목제509차 월례회의 훈화(2021.6.27)2021-06-29 10:34
작성자 Level 9

영적 독서: 11장 레지오의 기본 요소 중  5. 쁘레시디움 주회합(교본 113111141) 

 

주회합은 레지오의 심장이며, 이곳으로부터 생명의 피가 모든 동맥과 정맥의 혈관으로 흘러들어간다. 주회합은 레지오를 밝히는 전력과 동력을 생산하는 발전소이며, 레지오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을 제공해 주는 보화의 곳간이다. 주회합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단원들과 더불어 앉아 계시는 위대한 공동체의 수련 도장이며, 주회합을 통해 그분은 우리의 활동에 필요한 독특한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 또한 각 단원은 쁘레시디움 주회합을 통하여 절제된 신앙 정신이 몸에 배게 되어, 우선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개인 성화에 힘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이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데 최선이라고 판단되는 레지오에 마음의 눈을 돌려, 자신의 취향을 억누르고 배당받은 활동을 수행하게 된다. 그러므로 레지오 단원들은 주회합에 참석하는 일이 레지오의 으뜸가는 의무이며 가장 신성한 의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 주회합 참석의 의무는 무엇으로도 대신 채울 수가 없다. 주회합 참석에 소홀한 단원들의 활동은 마치 영혼이 없는 육체와 같다. 이 으뜸가는 의무를 게을리하게 되면 어떠한 활동도 성과를 거두지 못하게 되고 곧 레지오 대열에서 탈락하고 만다는 사실은 이치로 보아도 그렇고 이미 경험상으로도 잘 드러나 있다.”

 

[레지오 단원의 영적 수련장()이자 성실성의 표본이 되는 주회합]


레지오의 기본 요소 중에서 단원의 으뜸가는 의무는 주 회합에 출석하는 일이다(교본 111쪽 참조). 레지오 회합의 주요 내용은 단원들의 희생 정신으로 매주 함께 모여 기도와 공부를 하고 활동 보고와 활동 배당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회합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매주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목적이 주회합을 통하지 않고서 이룰 수 없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매주 회합에 참석하려면 자기 희생이 따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레지오가 확신을 가지고 이 같은 자기 희생을 요구할 수 없다면, 레지오라는 조직을 서 있게 하는 그 원동력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교본 13317-24)

쁘레시디움은 성실함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성실함의 본보기인 쁘레시디움. 교본 180-181). 쁘레시디움 주 회합은 천재지변이 없는 한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 “단원들은 때때로 질병이나 휴가 또는 그 밖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주어진 의무를 다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나 쁘레시디움의 경우에는 모든 단원이 한꺼번에 결석하는 일은 없으므로 개별 단원의 경우 같은 제한을 받지는 않으며, 실질적으로 회합을 가질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떤 이유로도 주회합을 걸러서는 안 된다. 만약 정해진 날짜에 도저히 회합을 가질 수 없는 경우에는 다른 날로 옮겨서라도 주회합을 열어야 한다. 단원 대다수가 결석했다고 해서 그것이 회합을 가질 수 없는 이유가 될 수가 없다.”(교본 18019-27)

 

33장 레지오 단원의 의무 1. 쁘레시디움 주회합에 규칙적으로 정각에 출석해야 한다.

() 이 의무는 몸이 편안할 때보다는 고단할 때, 날씨가 좋을 때보다는 나쁠 때, 그리고 흔히 어딘가 가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 지키기가 어렵다. 그러나 어려움이 없는 시련이 어디 있으며,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지 않고서 어떻게 참된 공로를 쌓을 수 있겠는가?

() 활동 보고를 하기 위해서 주회합에 참석하는 것보다는 활동을 하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주회합에 참석하는 것이야말로 으뜸가는 의무이다. 주회합을 뿌리라고 한다면 활동은 꽃이다. 뿌리 없이 꽃이 필 수 없듯이 주회합 없는 활동은 있을 수 없다.

() 먼 길을 왕복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출석의 의무를 충실하게 지키는 단원은 그가 영신적인 안목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인간적인 상식으로 볼 때는 쁘레시디움의 주회합에 참석하기 위해 왕복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 시간을 더우 가치 있는 다른 일에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낭비된 시간이 아니다. 주회합에 오고 가는 데 사용한 시간은 단원이 수행한 전체 활동의 일부분이며, 그것도 매우 가치 있는 일부분이 된다. 성모님이 엘리사벳을 만나려고 먼 길을 다녀오신 것을 시간 낭비였다고 할 수 있겠는가?”(교본 2882-26)

 

지난 613일 간부 화상 연수 때 강의했던 내용(주제: 레지오 단원의 영성생활) 중에서, 영성생활에서 개인적인 지속적이고 끊임없는 수련을 빼면 영성생활이라 할 수 없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지탱해주는 대상과의 성실한 관계성을 유지해 나가는 방법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사제에게는 구원의 희생제사인 미사성제를 매일 드리는 것과 말씀의 봉사자로서 성경 말씀에 대한 묵상과 성실한 강론 준비 등이 되겠다. 올해로 사제생활 30년을 맞게 되었다. 되돌아 보면 사제로 30년을 살아왔다는 것 자체가 큰 은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사제로서의 정체성을 유지시켜 주는 사제로서의 영성생활에 충실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어떤 이들은 영신 생활을 순전히 개인적 이득이나 손실에 관련된 문제로 격하시킨다. 또한 그들이 가진 보화를 영혼의 어머니신 성모님께도 맡겨 드려야 한다고 권하면 불만스러워 한다.”(교본 6710-11) “참된 신심을 실천하는 데서 얻는 은총이나 이 신심이 교회의 신앙생활 안에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미루어 보면 이 신심이 분명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메시지임을 알 수 있다. 이 점이 바로 몽포르의 루도비코-마리아 성인이 주장한 내용이다. 성인에 의하면, 이 신심을 실천하는 이들에게는 많은 은총이 약속되어 있으며,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기만 한다면 이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이 신심이 가져다준 열매가 너무나 뚜렷하여 도저히 착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단호하게 말할 것이다. 이처럼 참된 신심을 가르치고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경험한 은총이 모두 믿을 만하다고 볼 때, 이 신심이 내면생활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들어 우리들의 마음이 이기심을 떠나서 순수한 지향으로 채워지리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교본 663-9)

오늘 읽은 영적 독서 내용 중에서도 주회합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단원들과 더불어 앉아 계시는 위대한 공동체의 수련 도장이며, 주회합을 통해 그분은 우리의 활동에 필요한 독특한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고 했다. 그러니 레지오 단원들은 주회합을 통해 기도하고, 활동을 보고하며 교본을 공부하면서 레지오 단원으로서 나름대로의 영성생활 중 가장 중요한 기본 요소인 수련이라는 것을 수행하는 것이다.

 

예전에 고등학생 때 들었던 우화 하나가 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산행을 하다가 바위에 앉아 쇠덩어리를 갈고 있는 남자 하나를 보게 되었다. 그 이유가 궁금하여 물어 본 즉, 그 남자는 옛날에 이웃과의 다툼 중에 화를 참지 못하여 사람을 때려 죽인 사람이었다. 그는 살인죄로 형을 살고 나온 후 산속으로 들어가 참회하는 마음으로 쇠를 갈아 바늘을 만들려고 하고 있는 중이라는 말을 했다. 그 남자의 말을 들은 여행자는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의 진지한 모습에 그냥 지나치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10년이 지난 후 그가 다시 그 산을 찾게 되었다. 그 사람은 그동안 잊고 지냈던 옛날 쇠를 갈고 있던 남자가 생각이 나서 주변에 살고 있던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 남자는 벌써 쇠덩어리를 갈아 바늘을 몇 개나 만든 후 그곳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그곳에 나와 쇠를 갈면서 자신을 참회하며 마음을 다지게 되었다.

얼핏 보면 쇠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일이 무모하기도 하고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매일 반복해서 하는 일상적인 일이 엄청난 성과를 거두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레지오 단원들이라면 주회합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제로 매주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안다. 세상에는 그것 말고도 해야 할 일들이 많고, 내 마음과 의지와는 달리 나를 그것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일들, 유혹들, 뜻밖에 다가왔던 사건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번 서울 Se.에서 레지오 설립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들이 준비하는 것 중 하나가 있다. 처음에 한 Co.단장이 건의를 해서 시작하게 된 일이다. 레지오 단원으로 적을 올리고 30년 레지오 단원으로 지낸 사람에게 교구장님의 근속상을 주자는 취지이다. 그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하여 조사를 해보니 생각보다 꽤 많은 수의 사람이 나오리라는 추정된 결과가 나타났다. 서울교구 레지오 단원을 대략 4만명으로 잡았을 때 5%에서 많게는 10% 정도의 단원들이 될 것이라는 추정이다. 단원으로서 30년을 살았다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국어사전에는 근속이란 한 일자리에서 계속해서 근무했다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니 근속이란 말 그대로 성실함을 드러내는 표상이기 때문이다. 교본에는 근속이라는 표현 대신에 성실함의 본보기로 주회합에 성실히 참석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성실함의 본보기인 쁘레시디움. 교본 180-181).

그런데 막상 이 인원에게 교구장님의 근속상을 주자니 상이라는 취지가 무색하게 된다. 왜냐하면 상이란 취지가 희소가치와 그의 감추어진 노력에 대한 치하 때문에 주는 것인데, 너도 나도 햇수로 30년 레지오 활동을 했다고 하니 그 많은 인원에게 교구장님께서 치하할 정도로 당연히 근속상을 받을 만한가 하는 부분이다. 더욱이 이 인원들이 레지오 단원으로 가장 중요한 의무이자 기본 요소가 되는 주회합을 한번도 빠지지 않고 단원생활을 한 사람이 있을까처음에는 경이로웠다. 그러나 나중에 그 안에는 유고 결석 뿐 아니라 장기 결석자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주회합을 한번도 빠지지 않고 레지오 30년 근속한 단원이 있을까라는 말을 하면 어떤 이들에게는 숨이 막혀 버리고 가당치 않은 일이라 여길 것이다. 그러한 일들은 본인이 아무리 원한다고 해도 하느님께서 그 사람에게 함께해주시고 허락해주시지 않는다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로 그 자체로 은총의 생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서 한 사람의 개인적인 빛나는 업적이나 공로, 그리고 그가 지니고 있는 재능은 무색해진다.

성경에서 에녹노아를 가리켜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다(창세 5,22; 6,10). 하느님의 말씀과 하느님께서 원하신 일을 수행하기 때문에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사는 사람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많이 생각한다. 그러나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에녹과 노아에게는 세상의 다른 것들과 지금 이 순간 당장 세상의 유혹보다도 하느님을 우선적으로 선택했고 그분의 의로움을 찾았던 사람이었다.

 

레지오 100주년을 맞이하여 레지오 단원으로서 30년 근속자에게 교구장님 상을 주자는 취지에 앞서 우리는 오로지 레지오 주회합과 함께한 단원, 하느님께서 허락해주셔야지만 가능했고 하느님과 함께 살았던 사람을 찾는 작업이 되었으면 좋겠다. “레지오 단원이 지켜야 할 의무는 첫째, 쁘레시디움 주회합에 규칙적으로 정각에 출석하여 자신이 한 활동에 대하여 알맞고 또렷한 보고를 한다.” 이 의무는 상훈 제1항에 해당한다(교본 1689-10). 그리고 이 규칙은 100년 전 레지오 창립 때부터 시행해 온 기본 요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