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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21일 레지오 마리애 서울 무염시태 세나뚜스 담당 신부로 인사발령을 받은 서울대교구 이동훈 시몬 신부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어려운 시기에 제가 소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주회합으로부터 힘을 받지 못하는 레지오 단원들을 위해 지도신부 방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여러 회의 때마다 간부들에게 하게 되는 영적 훈화와 월례미사 때 강론을 이 홈페이지에 올려놓아 이곳에 접속하는 레지오 단원들의 영적 교육으로 활용할 것입니다.
아울러 제가 국내 성지순례를 하면서 제게 맡겨진 레지오 단원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다니는 곳마다 여러분들을 위해 초를 봉헌할 것이고, 순례지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기도를 이곳에 올려놓겠습니다.

제목레지오 마리애 설립 100주년 기념 축사2021-08-29 08:07
작성자 Level 9

레지오 마리애 설립 100주년 기념 축사(祝辭)

2021. 8. 28.

이동훈 시몬 신부

서울무염시태 세나뚜스 지도신부

 

축사(祝辭)란 모름지기 경사스러운 날을 맞아 귀한 분을 초대하여 덕담의 인사말을 청해 듣는 것입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여의치 않아 부득이 최소한의 인원으로 TV방송 미사를 하게 되었고 세나뚜스 지도신부인 제가 이 축사를 하게 되어 많이 송구함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익히 알고 있듯이 한국천주교회는 평신도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나중에 한국 땅을 밟은 중국인 주문모 신부에 의해 도입되어 조직된 명도회(明道會)를 중심으로 은밀하지만 활발하게 전교활동을 이루어 나갔습니다. 그러나 철저한 신분계급사회와 성리학과 유교전통을 통치 기반으로 사회에서 신앙이 추구하던 신분차별이 없는 평등사회와 조상제사에 대한 문제로 천주교는 초창기부터 혹독한 박해를 겪게 되었습니다. 신유박해(1801)를 기점으로 그동안 한국 교회의 초석을 다져왔던 평신도 지도층 거목들이 속속들이 쓰러지며 많은 순교자들을 내게 되었습니다. 박해가 심하던 시절 1838년에 조선에 들어온 제2대 교구장 앵베르 주교님께서는 삼엄한 박해 중의 한국의 교회를 성모님께 봉헌하며 원죄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수호해주시길 청하는 서한을 교황청으로 보내셨고, 이에 한국 교회의 수호자로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성모 마리아를 한국교회의 수호자로 승인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이 있기 8년 전 1830년에 프랑스 뤼 뒤 박에서는 성모님께서 총 세 번에 걸쳐 성녀 카타리나 라부레 수녀(1806-1876)에게 발현하셨는데, 이때 성모님께서는 당신의 신분을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라고 일러 주셨고, 뱀의 목과 꼬리를 밟고(창세 3,15) 황금색 지구본을 두 손에 들고 나타나셨습니다. 머리 주위에 타원형의 판에는 ,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님, 당신께 의탁하는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라는 기도문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지금 레지오 매 주회합 때마다 제대상에 올려지는 성모상과 벡실리움에 새겨진 상징들은 발현하신 성모님께서 특별히 당부하신 기적의 매달 안에 담겨진 표상들이기도 합니다.

이 성모님의 발현이 있은 후 24년이 지난 1854128일에 가서야 교황 비오 9세께서 교회 초창기부터 조심스럽게 이어졌던 무염시태 교리를 공적으로 선포하셨습니다. 이 교리의 선포 후 우리에게 익숙한 다섯 개의 성모님의 영성과 관련된 신심단체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1917년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가 창설한 성모기사회’, 1921년 프랭크 더프 형제가 설립한 레지오 마리애’, 1943년 끼아라 루빅으로부터 시작된 마리아 사업회인 포콜라레 운동’, 1946년 해럴드 콜건 신부가 설립한 파티마의 세계사도직인 푸른군대’, 1972년 스테파노 곱비 신부가 시작한 마리아 사제 운동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이 중 레지오 마리애는 제2차 바티카 공의회 이전에 아직 평신도 사도직이라는 표현이 없었던 시기에 가난한 이들에 대한 물질적 지원과는 또 다른 차원의 성모님의 영적인 돌보심과 사도직 활동을 기반으로, 평신도였던 프랭크 더프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이 레지오 마리애는 장차 공의회가 추구할 주도적이고 능동적인 평신도 사도직의 비전을 담고 있었습니다.

192197일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지도신부 마이클 토허 신부와 프랭크 더프, 그리고 13명의 여성들과 첫 회합을 가진 이래로 빠른 속도로 전파되어 1950년경에는 거의 모든 대륙의 가톨릭 교회로 퍼져나갔습니다. 전 세계로 확장된 이 레지오 마리애가 벌써 100년이 흘렀고, 오늘 우리가 이 100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하게 된 것입니다.

1953년 한국 전쟁 후 사회적정치적경제적 혼란기에 한국 땅을 밟게 된 이 레지오 마리애는 불과 몇 년 만에 한국 교회 모든 교구와 본당으로 빠르게 퍼져나갔고 평신도 사도직 신심단체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갔습니다. 현재는 한국교회에 서울, 광주, 대구에 국가평의회인 3개의 세나뚜스가, 다른 교구들에는 각각 교구 평의회인 레지아가 조직되어 있습니다. 그간 조선교구설정 150주년 전국신앙대회(1981), 한국천주교설립 200주년행사(1984) 행사, 44차 세계성체대회(1989) 등 굵직하고 규모가 큰 행사 때마다 레지오 단원들의 조직력과 힘을 발휘했습니다. 이제 본당 사목자들의 사도직 협조자로서 없어서는 안 될 정도의 위상을 차지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매사 빛이 밝으면 그림자가 짙다고 했습니다. 레지오 마리애가 괄목할만한 성장과 병행하여 성모님에게서 우러나오는 최고의 영적 덕행들, 겸손순명이라는 빛을 발휘하지 못하는 순간에는 교만과 안일함, 불순종 그리고 레지오만의 특유의 고지식함으로 사목자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시대를 거듭하면서 초창기부터 활동했던 레지오 단원들은 나이가 들어가고 평신도 사도직으로서의 레지오의 위상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젊은 층의 단원들이 줄고 있습니다. 더욱이 작금의 코로나로 인해 신앙적 활동조차 비대면으로 전환되는 시기에 레지오 마리애도 역시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었습니다. 레지오의 심장박동이며 핵심적인 영적 수련의 장()주회합조차 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러 그 정체성과 조직 자체가 흔들리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어려운 시기에서도 레지오는 지난 1년 반 동안 맥 없이 두 손 놓고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레지오의 제일 중요한 주회합을 꾸려 나가기 위해 단원들은 비대면 Zoom 화상 회합과 SNS, Group Call 등으로 회합을 이어나갔고, 몇 본당에서는 간간이 기회가 허락될 때마다 사목자들의 지원 하에 미사 후 공동 주회합을 가지기도 하면서, 레지오 마리애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100’이라는 숫자는 충만한 완전수를 상징하지만 결코 정지된 숫자가 아닙니다. 만일 이 숫자를 통과했다면 이제부터 더 뻗어나갈 수 있는 또 다른 시작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더 성장하거나 더 어려운 길을 걸을 수 있는 여정이 시작되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예전에 여의도 광장에서 조선교구설정 150주년 기념행사를 할 때 공교롭게 하늘에 구름 사이로 십자가 형상이 뜬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기적이라 하며 다소 들뜬 이야기들을 했지만,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님께서는 이 150주년을 맞아 앞으로 한국천주교회가 더 어려운 십자가 여정의 길을 가야 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담담히 이야기 하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올해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여 이 즈음해서 우리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옥중에서의 마지막 회유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 온갖 일이 주님의 뜻() 아닌 것이 없고, 주님께서 내리시는 상이나 벌이 아닌 것이 없으니 이런 박해와 환난도 역시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바이므로, 여러분은 이를 달게 받아 참으면서 주님을 위하고, 오직 주님께 슬피 빌어 평안함을 주시기를 기다리십시오.” 이런 황망한 시절을 당하여, 마음을 늦추지 말고 도리어 힘을 다하고 역량을 더하여, 마치 용맹한 군사가 무기를 갖추고 전장에 있음과 같이 하여 싸워 이겨냅시다.” 이런 환난 때에는 주의 시험을 받아, 세속과 마귀를 쳐 덕공(德功)을 크게 세울 때니, 부디 환난에 눌려 항복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事主求靈事)에 물러나지 말고 오히려 지나간 성인 성녀의 자취를 만만코 다스려(修治) 성교회의 영광을 더하고 천주의 착실한 군사와 의로운 자녀가 됨을 증거하십시오.”

 

김대건 신부님께서는 험난하고 시시각각으로 다가왔던 위기의 순간마다 또한 스승 신부님들께 보낸 편지의 말미에서 늘 주님과 성모님께 의탁한 바 있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께서는 부제였을 때, 선교사를 입국시키기 위해 서해 해상로를 개척하고 페레올 주교님을 모셔 오기 위해 10여 명의 교우들과 상해로 가는 도중에 풍랑을 만나 배가 심각하게 부서졌을 때였습니다. 나중에 스승 리브와 신부님께 보낸 편지에는(1845.7.23) 두려움에 휩싸인 교우들에게 다음과 같이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고 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하느님 다음으로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신 성모님의 기적의 상본을 보이면서, ‘겁내지 마십시오, 우리를 도우시는 성모님께서 여기에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습니까?’”(리브와 신부에게 보낸 1845723일자 서한)

여러분 지금 겪고 있는 이 어려운 시기는 레지오 마리애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니 레지오가 걸어왔던 지난 세월에만 머무르지 말고 성모님의 군사답게 지혜와 용기를 내어 이 위기를 잘 이겨나가도록 합시다. 성모님의 군대인 레지오 단원 여러분, 희망을 잃지 말고 힘내십시오. 한국교회가 맞이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의 주제로 설정된 당신이 천주교인이요?”라는 주제에 걸맞게 우리도 레지오 마리애 설립 100주년을 맞아 질문을 던져보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성모신심과 성모님의 영성을 삶에서 우려낸다는 레지오 단원이요?”

 

이제 레지오 마리애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며 우리는 세 가지를 준비해왔습니다. 이 시간 올해 서울대교구 사목교서의 핵심인 복음의 기쁨을 전하는 교구 공동체’, ‘선교하는 교구 공동체를 염두에 두며 우리가 그동안 준비했던 레지오 단원들의 선교 활동으로서 비신자 입교 권면과 냉담자 회두를 위한 접촉활동에 대한 봉헌카드와 묵주기도를 봉헌할 것입니다. 참고로 선교를 위한 봉사활동은 레지오의 근간이 되는 활동이기 때문에 이 기념미사 이후에도 끊임없이 지속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레지오의 심장이며, 레지오 단원의 영적 수련장()이자 레지오 단원으로서 성실성의 표본이 되는 주회합에 단원으로서 30년 동안 근속하며 한번도 빠지지 않았던 개근(皆勤)자와 10회 미만 결석한 정근(精勤) 단원을 찾아보았습니다. 세 번째로 준비한 것은 레지오 마리애 설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제작한 다큐멘터리입니다. 이제 이 기념식에서는 저희가 준비한 이 세 가지를 확인할 것입니다.